6.1.3 가격통제에 대한 평가
제1장에서 소개한 경제학의 10대 기본원리 중에 시장이 경제활동을 조직하는 좋은 수단이라는 것이 있었다. 이 원리를 근거로 경제학자들이 가격 상한제나 가격하한제에 항상 반대하는 것이다. 경제학자들은 가격이란 것이 우연한 과정에서 형성된 결과가 아니고, 수요와 공급의 이면에 있는 수많은 소비자들과 기업들의 의사결정의 결정체라고 본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을 일치시키고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정책담당자들이 법령으로 가격을 결정하면 경제의 희소한 자원을 배분하는 가격의 정상적인 신호 기능이 흐려진다.
경제학의 10대 기본원리 중의 또 다른 하나는, 정부가 시장 성과를 개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가격통제를 도입하는 것은 시장에서 결정된 결과가 불공평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가격통제는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목적으로 도입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임대료 규제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거비의 경제적 부담을 낮춰주려는 것이고, 최저임금제는 저소득층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것을 돕기 위한 제도다.
그러나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 임대료 규제가 시행되면 임대료는 낮아지지만 임대주택 주인들의 주택 유지, 보수 노력을 저해하고 집을 구하기가 어려워진다. 최저임금제는 일부 근로자들의 소득은 올라가지만 다른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는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방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길이 있다. 예컨대 저소득층 가구들을 돕기 위해 이들에게 임대료 보조금을 지급하면 임대료 규제와는 달리 임대주택의 공급을 저해하지 않으므로 주택 부족 현상을 야기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임금 보조제도는 고용을 줄이지 않고 저소득 근로자들의 생활수준을 높일 수 있다. 임금 보조제도의 한 예는 근로소득세 환급제도(earned income tax credit)로, 소득을 보충해주는 제도이다.
이와 같은 대체적인 정책수단은 가격통제보다 우월하지만 이들 역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임대료 보조나 임금 보조에는 재원이 필요하므로 정부가 세금을 인상해야 하며, 다음 절에서 설명하는 바와 같이 세금은 그 나름의 사회적 비용이 있기 때문이다.
<뉴스 속의 경제학. 차베스 대통령과 시장>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시장 가격을 자기가 정한 가격으로 바꾸려고 시도했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 21년간 분유 수입 사업을 하던 이스마엘 카데나스 길(Ismael Cadenas Gil)씨는 드디어 사업을 접기로 했다. 정부가 부과한 가격통제 때문에 분유 수입 사업으로 더 이상 이익을 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상 수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격통제가 너무 심해서 도저히 분유를 수입해서 팔 수 없다"라고 말한다. 그의 이런 어려움은 이제 베네수엘라에서 점점 더 일반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이것은 좌파 차베스(Chavez) 정부의 인기 영합적인 가격통제 정책의 결과 기업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격통제 정책이 인플레이션을 다소 진정시키긴 했지만, 베네수엘라의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남미 국가 중 가장 높은 편이다. 또 가격통제는 물량 부족을 초래했을 뿐 아니라 암시장이 번창하게 만들었다. 일부 농민들과 소매상들은 손해를 보고 파느니 아예 물건을 내놓지 않음으로써 가격통제를 피하고 있다.
베네수엘라 소비자들과 기업들이 겪는 어려움은 남미 국가들에서 점증하는 영합주의적 시장 규제 유혹에 대한 경고의 의미가 있다. 차베스 대통령은 막대한 석유 수입을 그가 지어낸 표현인 '21세기 사회주의'를 실현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그의 목표는 가격통제, 고정환율제, 이자율 동결 등의 정책수단으로 사회적 지출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다.
그러나 가격통제로 손실을 본 베네수엘라의 사업자들은 생산을 줄이고 있다. 옥수수 생산 농민들은 정부의 가격통제로 옥수수 수요가 고갈되었다고 항의하면서 대통령궁 앞에서 시위를 했다. 농민들은 괜찮을 가격을 받지만, 옥수수 가공공장들은 옥수수 구매 가격으로는 이익을 낼 수 없다면서 구입을 꺼리고 있다. 베네수엘라 국내 최대 농산물 가공회사 알리멘토스 폴라(Alimentos Polar)는 이 때문에 옥수수 가루의 생산을 중단해야 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지난해에는 커피 제조사들이 커피 가격에 부과된 가격 상한선에 항의하면서 공급을 거부해 몇 주 동안 커피 부족 사태를 겪기도 했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5위의 석유 수출국으로, 국영 석유회사는 미국 내 석유 수요의 15%를 공급하고 있다. 막대한 석유 수출로 얻은 현금 수입으로 외국 상품을 구입해서 국영 슈퍼마켓 체인 메르칼에서 원가보다 낮은 가격에 손해를 보면서 팔고 있다. 이는 차베스 대통령의 가격통제 정책을 보조하는 셈이다.
차베스는 국가가 이런 통제를 하는 것은 '탐욕스런 자본가'와 '투기 세력'에게서 저소득층을 보호하기 위함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생산을 중단하는 공장들을 정부가 압류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분유 수입 사업을 하는 카데나스 씨는 정부의 이런 규제로 280명이던 직원을 12명으로 줄였다. 그는 자신의 사무실을 새로운 건설회사를 설립하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의 가격통제를 받지 않는 농산물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 찾아보고 있다고 한다. 그는 "우리는 게으르지 않다"라고 말한다.
지난 커피사업자들의 파업이 지금까지 가장 강력한 저항이었다. 정부가 커피 가격은 동결한 채 커피 가공공장에 제공하는 커피 원두의 가격을 100% 인상하자, 가공업자들이 공장 가동을 중단한 것이다. 몇 주간의 파업 끝에 정부는 커피 가격을 60% 인상하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수도 카라카스 교외에 사는 은퇴한 페드로 교수는 "내가 원하는 커피 브랜드는 여전히 구입할 수 없다"라고 말한다.
사업자들은 점차 정부의 가겨공제에 회피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일부는 아예 규제를 무시하고 있다. 시내 슈퍼에서 최상급 쇠고기는 정부의 가격상한보다 30%나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어떤 사업자들은 정부의 가격통제가 있는 국내산 쇠고기 대신 가격규제가 없는 고가의 수입 쇠고기를 판매하고 있다. 어떤 사업자는 정부의 가격통제가 없는 물품의 생산으로 업종을 전환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낙농업자들은 우유를 생산하는 대신 요구르트나 치즈와 같이 규제받지 않는 상품의 생산을 늘리고 있다. (출처_ The Wall Street 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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